8월 13일(15일차)~8월 15일(17일차)

 

엄마는 새벽까지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아 관장을 4번 정도 하고 나니 속이 편해졌다고 했다. 주치의가 휴가기간이라 다른 의사가 와서 진료를 대신하고 있었는다. 속이 메쓱거리는데 왜 관장만 하고 있는지 돌파리 같았지만 엄마는 관장을 해서라도 속이 편해지기를 바라셨다.

 

아기들은 아프고 나면 걷기를 하던지 아프고 나서 말을 하던지 하듯이 엄마도 속메쓱거림과 복통이 심하고 난 뒤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시도를 하였다. 하반신 마비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였는데 아빠의 부축을 받고 열 발자국을 걸었고 재활치료에서도 앉았다 일어났다도 하고 봉 잡고 걷기 시작하였다.

 

8월 17일(18일차)

나는 주치의 의사가 중추신경계로는 전문의지만 희귀병이라는 길랑바레증후군과 밀러피셔증후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은 의심이 계속 들어서 폭풍검색을 하였다. 그러던 중 경희의료원 윤성상 선생님이 길랑바레증후군을 20년가까이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오빠는 지난번 아산병원을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것이 마음에 걸려 전원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였고 경희의료원에 전화를 걸어서 전원신청을 하고 싶다고 하니 코로나상황이라 전원이 싶지 않다는 말에 전원을 하는 것에 대해 포기를 하였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을 만나서 현재 치료를 잘 받고 있는지 상담은 해줄 수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으나 오빠가 엄마의 치료에 관한 모든 서류를 갖고 있어서 반대를 무릅쓰고 갈 수가 없었다. 아산병원으로 갈 때도 언쟁을 한터라 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도 전원할 수 없다는 상황을 알았기에 오빠를 원망만하고 강행을 못한 것 같았다.

 

8월 18일(20일차)

이런 상황에 다행히도 엄마는 걷기 시작하더니 자전거 운동기를 30분을 탔다고 했다. 엄마의 의지가 강해서 더 운동을 하고 싶었으나 어지럼증과 속메쓱거림이 계속되어서 오늘 분량의 재활치료 중단을 했다.

 

2020/11/08 - [삶의 자취/엄마 투병기] - 길랑바레증후군, 밀러피셔증후군- 엄마 투병기8, 속메쓱거림의 연속, 복시현상

설정

트랙백

댓글

길랑바레증후군, 밀러피셔증후군- 속메쓱거림의 연속, 복시현상

8월 11일 (33일차) 

 

엄마는 면역글로블린 주사를 맞은 후로 아주 서서히 마비가 풀리고 있는 상태라 그런지 엉덩이도 들어 올려서 기저귀를 갈때 좀 편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밀러시셔증후군으로 동공의 마비로 눈의 초점도, 눈동자도 잘 움직이지 못하는 복시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지럼증을 보이고 있고 복시현상으로 인한 건지 속메쓱거림증상을 호소하였다. 엄마는 왼쪽눈커풀이 떠지지 않았고 오른쪽 동공은 움직이지 않아 동공만 움직이라고 하면 얼굴을 움직였다. 

 

그리고  복시현상으로 메쓱거림과 어지럼증, 가래와 호흡곤란증으로 산소포화도를 높여주는 산소호흡기를 계속 코에 하고 있었다. 가래석션은 중환자실에서 나올 때는 노랬는데 점점 묽어지고 있으나 가래가 한 통이 3일 정도면 다 찰 정도로 많이 나왔다.

 

 

2020/11/08 - [삶의 자취/엄마 투병기] - 길랑바레증후군, 밀러피셔증후군, 엄마 투병기7, 아산병원에서 다시 원주세브란스로

설정

트랙백

댓글

8월 5일 수요일(27일차)

 

아침에 비가 억수로 왔지만 그래 가자! 하여 병원에서 대기 중인 사설 구급차와 응급구조사와 함께 아산병원 응급실에 40분을 타고 도착을 하였다. 

 

그런데 현재 아산병원은 코로나 환자에 대해 국가지정 치료병원이라 음압 병동이 다 찼으며 엄마가 폐렴 환자여서 받아줄 수 없다며 퇴짜 시켰다. 아산병원에서 임상심리사로 있던 사촌동생이 나와서 그 의사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무작정 오라는 사촌동생이 일을 다 처리해 놨는지 알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안타까움에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그냥 돌아가자 해서 타고 왔던 구급차를 타고 되돌아갔다. 가면서 다시 원주세브란스 병원의 신경과 간호사실에 전화를 하니 여기도 상급병원이니  다시 돌아올 때는 다른 상급병원으로 옮기게 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하여서 가는 동안 불안했다. 

 

원주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절차상의 문제로 6시간 동안 엄마를 기다리게 하였다. 엄마는 '집에 가자, 집에 가자' 하고 나는 무모한 이러한 결정으로 엄마만 고생시켜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라며 엄마와 엉엉 울었다. 

 

엄마는 다행히도 원래 있던 병실 그 침상으로 옮겨졌다. 우연히 전공의가 간호사실에 있는 것을 보고 아산병원에 가기 전 다시 돌아오더라도 엄마를 잘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며 갔는데 다시 돌아왔다. 엄마 치료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오늘 하루가 참 기네요. 저는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하니 "네 그래야 후회도 안 남아요. 저희는 저희가 할 일을 할게요. 걱정 마세요"라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인성이 좋아하는 곳은 어느 곳이나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인성이 좋은 의사를 만난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있던 일을 말해 주었는데 엄마를 시체처럼 놓고 "똑바로 잘 배워 지금 안 배우면 언제 배울 거야?"라고 하면서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들이 낄낄거리면서 웃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중환자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엄마가 직접 겪으니 정말 화가 났다. 그래서 오빠가 전공의에게 말했더니 인성까지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교육은 시켜줘야지...

 

 

2020/11/08 - [삶의 자취/엄마 투병기] - 길랑바레 증후군, 밀러피셔 증후군 - 엄마 투병기6, 아산병원응급실

설정

트랙백

댓글

8 1일 토요일( 23일차) : 아산병원으로 전원고려

 

원주세브란스병원이 강원도에 있고 현 주치의는 말초신경계, 길랑바레증후군보다는 중추신경계, 뇌졸중 전문의라 그리고 생소한 희귀병이라 아산병원에 진료의사 중 말초신경계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고 싶었다. 아무래도 서울에 명의가 있다는 고정관념도 있고 더 큰 병원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산병원으로 옮기려고 가족들과 의논을 하였다.  그래서 주치의한테 의논을 하니 진료기록과 CD등 준비는 해줄테니 전원을 위한 전화는 안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얼마나 속으로 쌍욕을 했던지

 

아산병원에서 임상병리사 이종사촌동생은 그냥 응급실을 통해서 오라고 그러면 하루정도 응급실에 있다가 병실로 입원을 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래서 병원사정을 아는 사촌동생의 말에 의심은 했지만 가족들은 가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8월 3일 월요일 (25일차) 

 

올해는 코로나에 긴긴 장마와 폭우로 강수량을 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상이변의 해였다. 그날도 폭우가 내려서 옮길까 고민하고 있는데 오빠가 다음에 옮기자고 해서 연기를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산병원이 새벽에 코로나확진자가 나와서 응급실폐쇄로 이동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게되었다. 그렇게 엄마를 이동시키면 고생만 했겠다는 생각에 비가 많이 온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나서 8월 4일 다음날 아산병원응급실은 재게를 하였다고 사촌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8월 4일 화요일(26일차) 

 

엄마한테 간병을 하러 가는날 올케언니와 통화중 이왕 옮기려고 했던거 응급실재게도 했다니 옮기자고 결론을 내렸다. 밤새 옮겨야 하나 비도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고민 고민의 연속이었다.

 

2020/11/08 - [삶의 자취/엄마 투병기] - 길랑바레증후군(길랭바레증후군), 밀러피셔증후군 - 엄마 투병기5, 석션

설정

트랙백

댓글

7 29일 수요일( 20일차) : 엄마 폐렴 석션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나오면 나는 일상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길랑바레 증후군의 증상 중 길랭-바레 증후군 환자의 40% 이상에서는호흡근이 매우 약해져 일시적으로 기계호흡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엄마가 그랬다. 그래서 배의 힘이 없어서 가래를 뱉아내지 못하였다. 폐에 달라붙어 있는 가래를 떼내야 해서 석션을 하였는데 가래를 빼주지 못하면 중환자실에 갈 수 도 있거나 기도삽관으로 가래를 빼야 해서 가래 석션 이 아주 중요했다.

 

간호사 한명이 기다란 주황색 호수를 입안에 개구기로 넣어서 기계로 가래를 흡입하는 것을 알려주었는데 호수를 깊숙이 넣는 기술이 필요했는데 호수를 폐까지 넣어야 하는데 엄마가 고통스러워하여 잘 못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부탁을 했는데 원주세브란스병원의 82 병동 간호사들은 정말 친절하였고 특히 간호부장과 엄마 담당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 헌신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

 

엄마는 그나마 그 병실에서 가장 양호한 환자였다. 이 병실의 환자들은 주로 뇌졸중 환자들이었다. 엄마의 앞쪽에 있는 아가씨는 25살인데 뇌졸중으로 2년 동안 투병중인데 엄마가 간병을 하고 있었고 아가씨 옆에 분은 은행 지점장, 50대였는데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그 옆의 할머니는 의식만 있었는데 잠만 주무시고 계셨다.

 

뇌졸중 환자들은 의식과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으며 목에 구멍을 내서 기도삽관을 하여 석션을 하였다. 그리고 예쁜 얼굴에 머리를 감겨주기가 힘드니 스포츠머리를 잘랐다. 소리도 다 듣고 그랬는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엄마는 중환실에서부터 가래 석션을 하였는데 중환자실에서는 수면제로 석션하는데 힘듬을 잘 느끼지 못하였는데 의식을 가지고 석션을 하는데 죽다 살아나듯한 고통으로 석션을 계속했다. 하루에 10번 이상씩 한 달 이상을... 엄마의 첫 번째는 호흡곤란으로 중환실에 있었고 두 번째는 가래 석션이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갔으면 좋겠어'라고 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엄마를 하루 간병을 하고 고통스럽게 석션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집에 가야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오는데 너무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 집 앞 몇 m를 걸어오는데 창피하게 마음이 북 바쳐 울음이 났는데 아이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데 울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2020/11/08 - [삶의 자취/엄마 투병기] - 길랑바레증후군(길랭바레증후군), 밀러피셔증후군 - 엄마 투병기4, 안락사이야기

 

설정

트랙백

댓글